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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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 59

내 인생의 지침을 돌려주신 소 재순 교감선생님

5. 내 인생의 지침을 돌려주신 소재순 교감 선생님 인성중학교(공민학교)에 들어가 첫 여름 방학을 일주일쯤 앞둔 어느 날 "야! 정일웅! 너 이리와 봐!" 선배인 3학년 실장이 나를 불렀다. "너 임마 너는 공부도 잘 허고 똑똑헌디 멋헐라고 이런 학교 들어왔냐?" "..............." "얌마! 이 학교..

4. 아! 징그러운 악연

4. 아! '인성중학교'로 나를 보낸 담임선생님 5학년이 되었다. 새로 반이 편성되고 조금은 낯선 애들도 함께 모여 새 학년 새 학급이 편성되었다. 아이들은 새로운 담임에 대한 기대로 마음을 부풀리며 첫날 첫 시간에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님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나는 박진규 선생님이 계속 담임을 하였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 아! 우리 모두는 경악하고 말았다. '이한충'! 선생님이었다. 교실 문을 화들짝 열어 제키고 싸늘한 눈초리로 타이어 슬리퍼를 직직 끄시며 들어오는 창백하고 잔인한 얼굴, 싸늘한 눈으로 살기를 뿌리며 대나무 뿌리 매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여 졌고 아이들의 눈에는 절망과 탄식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마치 지..

글을 시작하면서

책을 펴내며>....팔불출의 고백 이 책을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나에게 진정으로 고마운 사람, 나의 아내에게 바친다. 나의 아내는 나의 구원자이며 나의 스승이고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반려자로서 나의 집안 모든 일에 해결사였으며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의 인생행로를 안내하고 지도해 준 사람 이다.그러한 나의 아내에게 내가 위로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이러한 졸품이나마 내 나름의 정성을 다해 썼다고 생각하는 이 책으로 말로 다하지 못한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일 하나는최 우남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8년이나 연하인 그녀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현명하고 판단이 정확하였으며그 누구도 견디기 힘든 시집의 어려운 일들을 ..

차 례

차 례 1. 목포발 서울행 완행열차............................................................1 2. 6. 25 전쟁...............................................................................4 3. 전주 중앙 초등학교 시절............................................................8 하모니카 배우기........................................................................9 라틴어 복사.............................................................

2. 6.25전쟁

2. 6.25 전쟁 전주 남부시장 입구에서 미영(목화)씨 기름 짜는 공장을 하던 어머니의 외사촌 동생 ‘박 명식’씨가 방을 한 칸 내어 주어 우리 식구는 그 방에서 살았다. 수녀고모가 방문하여 전주에 온 며칠 후에 나를 데리고 가서 전주 성심유치원에 입학을 시켰다. 성심 유치원 나보다 일찍 다니던 학생들과 같이 놀이도 하고 한글도 배우고 셈도 익혔다. 이듬해 5월 유치원을 졸업하고 6.25사변이 일어났다. 모든 사람들이 피난 짐을 꾸려 시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엄마, 아빠, 누나, 나와 여동생, 우리 다섯 식구도 피난길을 떠났다. 아버지와 알게 된 어떤 사람의 고향집으로 임시 거처를 옮긴다는 것이었다. 그곳은 '전북 완주군 남관면 내아리'였다. 소달구지에 쌀5가마와 보리쌀 2가마, 옷을 넣은 고리짝 한..

인생의 지침을 돌려 주신 소재순 교감선생님

5. 영생중학교로 학교를 옮기다. 인성중학교(공민학교)에 들어가 첫 여름 방학을 일주일쯤 앞둔 어느 날 "야! 정익훈! 너 이리와 봐!" 선배인 3학년 실장이 나를 불렀다. "너 임마 너는 공부도 잘 허고 똑똑헌디 멋헐라고 이런 학교 들어왔냐?" "..............." "얌마! 이 학교는 중학교 인가도 안났어 임마!, 이 학교 백년 댕겨도 고등학교도 못가 임마!" "............" "취직도 못혈마! 취직이 된다고 혀도 얄마! 뱃놈 뒤야각고 멋헌다냐!" "............" "너 이 학교 꼭 댕기고 싶냐?"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다. "너 말이여 인가(認可) 난 학교로 가라! 니가 아까와서 그러는 것이여!" "거그가 어딘 디?" "너 내 말 잘 들어 봐! 지금 말이다. 영생학교가..

3. 초등학교시절

3. 전주 중앙초등학교 시절 1952년 3월 코 수건을 왼쪽 가습에 달고 중앙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1, 2학년 때에는 강당에서 여러 학급학생들이 여기저기 선생님 앞에 쪼그려 앉아서 공부하였다. 3학년 때부터 교실이 생겼다. 3학년 담임을 발표하는 운동장 조회에서 나는 가슴을 조이고 있었다. 제발 '호랑이' '똥 싼 바지'라는 그 선생님만 담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나는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다. 그 많은 선생님 중에 하필이면 3학년 5반 담임이 바로 그 호랑이선생 '이 한충'선생이란다. 나는 첫날부터 담임선생의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머리에 ‘기계독(백선이라는 곰팡이 병)’이 올라서 박박 깎은 머리통은 마치 회 가루를 뿌려놓은 듯 허옇게 들떠있었고 목과 귓바퀴 가장자리에는 ‘도장버짐’이 올라 ..

목포발 서울행 완행 열차

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 1. 목포발 서울행 완행열차 1944년 음력 2월 18일. 아이를 낳으려는 아낙내의 진통소리가 방안에서 간간이 흘러나왔다. 동네 아낙들과 나이 먹은 이웃 아낙네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창호지 밖을 비집고 나왔다. ........................ "나온다! 심써!" "쬐까만 더 힘써!" "올채! 올채! 쬐까만 더!" .......................... 오랜 시간 한 여인의 처절한 몸부림과 긴장과 초조함이 온 방안에 퍼질 즈음 '아------ㄹㄱ 응- 아-------ㄱ ㄹ ㄹ' 우렁찬 고고성(呱呱聲) 소리가 방안의 긴장을 찢었다. "오매! 오매! 아들이네 ! 이내기(해남 땅끝마을 예낙리의 속칭) 떡(宅)! 고추 달고 나와 부렀어!" "워매 잘 히부렀네!" "..

내가 어쩌다 전통고 교장이 됐나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 교장이 된 이야기) (정일웅 자서전)

鄭 一雄 自敍傳 내가 어쩌다 전통고 교장이 됐나 (전주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 교장 수기) 英雄 出版社 <글을 쓰면서> 루가복음 8장 4절에서부터 씨앗을 뿌리는 농부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밟혀 죽거나 새들이 먹어버리고, 바위에 떨어진 씨앗은 말라죽고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