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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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처럼 살아온 나의 이야기 59

35. 새신랑 달구기

35. 새신랑 달구기 1973년 6월 19일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랑신부는 첫날 처가에서 자고 다음날 시댁으로 간다고 한다. 처가에 도착하여 그 동안 우리의 결혼을 그렇게도 반대하였던 사람들을 만났다. 한 결 같이 착하고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그토록 반대를 하고 시집가는 딸을 원망도 하였던 장모님도 주안상을 걸게 장만하여 신랑신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그렇게도 고통스럽게 반대를 하던 이들의 표정이 며칠 사이에 바뀌어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사랑스런 눈길로 대하여주고 있었다. 작은어머니들과 처가의 처남들과 골짜기 마을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커다란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마당에 그득하게 모여 있었다. 처 작은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에게 줄 선물보따리를 두툼하게 들고 ..

34. 결혼식

34. 결혼식 1973년 6월 17일 새벽 벽에 붙은 괘종시계가 네 번 느릿느릿 둔중한 소리를 내며 울릴 때마다 말아놓은 강철 나선형 스프링의 울림의 긴 여운이 깜깜한 어둠을 타고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르르 떠는 철사의 진동이 마지막 멎을 때까지 수많은 맥 노리를 반복하며 가늘어져 마침내 그 꼬리를 감추고 또다시 정적 속에 개구리 우는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똑' '똑' '똑' - '똑' '똑' '똑' - 작은 소리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바로 내가 누워있는 머리맡의 격자문의 문살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선생님-!" "정선생님-" 가느다란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렇다. 낯익은 목소리 그 소리는 분명 그녀의 친구인 '영희'의 목소리였다. "누구여-!" 얼떨결에 묻는 나의 말에 그녀의 ..

33. 결혼식 전 날 까지

33. 결혼식 전 날까지 ‘최 우남’은 그녀의 영적 지도자인 ‘최 덕자’ 선생님의 친절하고 자상한 지도로 천주교의 교리를 열심히 배우고 익혔으며 주일마다 미사에 빠뜨리지 않고 꾸준히 참례하였다. 나와 ‘최 우남’의 사이는 이제 많은 신자들 사이에서 머지않아 혼인을 할 것이라는 예측을 낳게 하였고 그것은 당연한 일 인양 묵시적 공인을 얻고 있었다. ................ 사월 5일 부활절 날 그녀는 영세를 하였다. 그녀의 세례식에 참석한 나의 마음은 정말 기쁘기 한량없었다. 하얀 한복을 입고 첫 영성체를 하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녀가 나와 결혼을 하기 전에 세례를 받은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결혼을 위한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 ‘최 우남’의 집안에서의 반대는 조금도 그 기세..

32. 날뵈기라우 야가 그 말 헌댔어라우

32. 날 뵈기라우 ! 야가 그 말 헌댔어라우! 그 날 밤부터 그녀의 셋째 언니는 그녀가 귀가하기를 기다렸다가 그녀가 저녁식사를 하고 나자마자 그녀를 다그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는 그녀의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와 가끔 남원에 사는 큰언니까지 합세하기에 이르렀고 이리에 사는 이모까지 몰려와서 결혼 방해 작전에 합세를 하였다. "야! 이년아! 너 그 사람한티 가서 그 말 헐래 안 헐래?" "무슨 말을?" "아! 이년아 긍게 머냐먼 '나는 당신을 사랑 안 헝게 결혼하지 않겄습니다'.- 이렇게 말이여! 그놈의 소방울(나의 눈이 크다고 그들이 붙인 별명)한티 그 말을 허란 그 말이여!" 그녀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웃지 말고 이년아! 말을 좀 혀 봐! " "뭐라고 말을 혀?" "내가 금방 말 혔잖여! 니..

사랑 쟁탈전

31. 사랑 때문에 벌어진 쟁탈전 이제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들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건 싸움이 아니다. 나의 우남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고 절실한가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실험이다. 여기서 내가 이들의 반대 논리와 우격다짐에 승복하고 말게 된다면 나는 최 우남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나에게는 이들이 어떤 공격을 하여 오더라도 끄덕도 하지 않을 만한 무기가 있다. '사랑', 바로 그것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을 물리적인 힘과 억압과 고함소리와 욕설로 갈라놓을 수가 있을까? 어림도 없다. 나에게는 '우남'을 향한 정열과 사랑이 있고 '우남'에게서 나에게 흐르는 샘물 같은 사랑이 있는 한 그 어느 폭력과 힘에도 굴하지 않을 용기가 있다. 왁자지껄한 여인내 들의 아귀찬 소리와 함께 기세..

30. 험한 질곡을 헤치고

30. 험한 질곡(桎梏)을 헤치고 항상 활달하고 명랑하고 남보다 많이 웃고 남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기술이 탁월하여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과 주위의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그녀 ... 그녀의 그런 모습 때문에 나와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거라는 말을 듣던 그녀.... 언제나 맑은 날씨를 상징하듯 웃음이 감돌고 활짝 갠 하늘처럼 발그레한 볼연지와 미소가 항상 얼굴에서 피어나는 그녀... 볼륨이 있는 오동통한 몸매지만 발걸음이 가벼워 항상 날아갈듯 명랑하게 걷는 그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혼자 노래를 잘 부르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는 거의 모르는 게 없는 그녀 ... 그러한 그녀가 나와 단 둘이서만 만나면 그 명랑한 기세는 간 곳 없고 오직 사랑의 마술에 걸린 요정처럼 순한 양으로 변해버린다. ......

29. 최우남 마음에 사랑이 싹트던 순간

29. 최 우남 마음에 사랑이 싹트던 순간 1월 1일 새해 들어 첫날이며 임실 읍의 새해 첫 장날이다. 내린 눈도 녹을 만큼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하였다. 오늘은 장이 꽤나 크게 설 것 같다. 8시 30분에 학교에 도착한 나는 기능직 '이 강노'씨와 함께 조개탄 난로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 장작개비를 넣고 신문지를 구기적거려 사이사이에 찌르고 성냥불을 붙였다. 연기를 내며 불이 붙었다. 금방 얼굴이 따뜻해 졌다. 장작에 불이 활활 붙어서 타기 시작할 때 마른 장작 세 개비를 더 넣고 그 위에 조개탄을 부삽으로 수북이 퍼서 장작불 위에 얹었다. 석탄가루가 불꽃이 되어 난로 밖으로 튀어나오며 기차 화통 냄새를 확 풍겼다. 조개탄 한 부삽을 더 떠서 난로에 가득 채우고 뚜껑을 닫았다. '부우우-' '부우우-' 소..

28. 겨울을 나는 풍란

28. 겨울을 나는 풍란처럼 살아온 최 우남의 성장기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강박관념.... 종족유지의 본능이라고나 할까? 유교적 관습에 젖은 시대 풍조 때문일까? ‘박 시약씨(장모님의 호적 이름)’의 아들에 대한 집착은 그 누구보다 컸다. 따라서 다섯째 딸의 출산은 그녀의 최대의 수치요 집안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것이었다. 다섯째 딸은 저주받은 운명처럼 생긴 모습마저 보기 싫게 생겨서 전혀 애착이 생기지 않았고 자기의 딸이라기보다는 원수 덩어리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러기에 이 보기 싫게 생긴 신생아가 어서 병들어 죽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젖이 불어터져서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젖을 먹였고 울거나 말거나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이는 산골짜기 외딴집에서 아무도 들어주지..

27. 최우남을 처음 만나던 날

27. 최우남을 처음 만나던 날 임실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경이었는데 나는 집에 가방을 놓고 바로 학교를 찾아갔다. 학교는 이미 방학을 하여 텅 비어 있었고 교무실의 조개탄 난로 가에 일직교사와 교감선생님 교무주임선생님 그리고 낯이 익어 보이는 젊은 여직원이 새로 부임하였는지 맑은 목소리로 웃으며 그들과 말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여인이 이제 막 행정직을 시작하여 교육청과 ‘청웅초등학교’를 거쳐 우리 학교에 전근하여온 '최우남'양임을 알았다. 그녀의 명성은 짧은 근무기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내릴 만큼 명랑하고 능력 있고 인성이 좋은 아가씨였다. 그녀가 ‘오정리’에서 교육청 쪽으로 출근할 때 읍내에서 ‘오정리’ 방향으로 가는 출근하는 나와 길에서 가끔씩 만나던 오동통하고 귀여운 아가씨였다..

26. 중등미술과 검정고시 낙방기

26. 중등 미술과 준교사 자격 검정고시 낙방 기 이야기를 돌려서 중등학교 자격 검정고시에 응시한 이야기를 좀 해야 하겠다. 70년대 초반 여자 교사들의 수가 급증하고 남자교사들이 교단을 떠나 다른 직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초등교사들의 이직(移職) 현상이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근무하던 임실 초등학교에서도 '홍동운', '허필수',선생님 등 배테랑급 선생님들이 사표를 쓰고 서울로 떠났고 야간 대학에 다니면서 중등학교의 자격을 딴 후에 중등학교로도 떠나가는 교사들이 많았다. 임실 초등학교에 근무한지 3년 째 되던 어느 날 나의 교육대학 선배이신 '강옥철' 선생님이 무슨 응시 원서 한 장을 내 놓으며 무조건 쓰라고 하였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원서에 나의 주소며 생년월일 등을 적고 도장을 찍었다. '중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