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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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흉내 내기

도종환의 시

정일웅 찻집 2010. 5. 7. 13:44

♤ 오월 편지



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 달 두 달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 깊디 깊은 침묵이 앉습니다.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면 꽃이 핍니까.
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다 그러 하겠지만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사는지 아는 까닭에
소리내에 말하지 못하고 오늘처럼 꽃잎에 편지를 씁니다.



소리 없이 흔들리는 붓꽃잎처럼 마음도 늘 그렇게 흔들려
오는 이 가는 이 눈치에 채이지 않게 또 하루를 보내고
돌아서는 저녁이면 저미는 가슴 빈자리로
바람이 가득가득 불어옵니다.



뜨거우면서도 그렇게 여린 데가 많던 당신의 마음도
이런 저녁이면 바람을 몰고 가끔씩 이 땅을 다녀 갑니까.
저무는 하늘 낮달처럼 내게 와 머물다 소리 없이 돌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

-글쓴이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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