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한강
아무것도 남지 않은 천지에도
남은 것들은 많았다. 그해 늦봄
널브러진 지친 시간들을 밟아 으깨며
어김없이 창은 밝아왔고
흉몽은 습관처럼 생시를 드나들었다.
이를 악물어도 등이시려워
외마디 소리처럼 담 결려올 때
분말 같은 햇살 앞에 그저
눈 감으면 끝인 것을
텃새들은 겨울부터 아니 그전 겨울부터 아니아니
그 전 겨울부터
목 아프게 지저귀고 있었다.
때론 비가오고 때론 개었다.
새 끼 식사는 한결 같았다.
아아
사는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어린 동생의 브라운관은 언제나처럼
총탄과 수류탄으로 울부짖고 있었고
그 틈에 우뚝 살아남은 영웅들의 미소가 의연했다.
그해 늦봄 나무들마다 날리는 것은 꽃가루가 아니었다.
부서져 꽂히는 희망의 파편들
오그린 발바닥이 이따금 베어 피 흘러도
봉쇄된 거리 벗겨진 신 한 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천지에서 떠밀려온 원치않은 꿈들이
멍든 등을 질벅거렸고
그 하늘
그 나무
그 햇살들 사이
내안에 말라붙은 강 바닥은
찍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모든 것이 남은 천지에
남은 것은 없었던 그 해 늦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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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깊은 속을 내가 어이 알까마는
그저 읽노라면
아리송 아리송 가슴에 나도 모르게 적셔오는 그 어떤 느낌....
시인은 위대하다.
시인은 대단한 사람이다.
이목구비가
없는 사람은 없을 진데
똑같은 태양아래
똑같이 바람쐬며 숨쉬고
찬것 뜨거운것
향기도 악취도 같이 느끼건만
시인의 감성은
독특하다
그
독특함이 시이고
그가 느끼는 것은 나와 다르다.
부럽고
닮고 싶어도
영원히 할 수 없는 그저 하망한 바램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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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장기두며
아내는 삐치고 토라져서 말도 안해
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너무 힘이든다.
아
왜 져 주지 못했을까?
찬 바람에
옷깃 여미고 천변을 걷노라면
토라진 아내의 마음이
나도 모르는 새
다 녹아있었다.
다
늙어서
할일 없는 두 노인네가
장기를 두고
토라지고 삐치고 약올라 하는 것도
하나의
아름다운 詩라면
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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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경노당 노인들이 한 해를 보내며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었다.
언제나처럼 마이골에서
이젠
질려버린
언제나 똑같은 오리주물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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