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웅 찻집
등대찻집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일기처럼 쓸 이야기가 있는 날

詩가 읽고 싶은 날

정일웅 찻집 2024. 12. 22. 19:03

        회상

                                              한강

아무것도 남지 않은 천지에도

남은 것들은 많았다. 그해 늦봄

널브러진 지친 시간들을 밟아 으깨며

어김없이 창은 밝아왔고

흉몽은 습관처럼 생시를 드나들었다.

이를 악물어도 등이시려워

외마디 소리처럼 담 결려올 때

분말 같은 햇살 앞에 그저

눈 감으면 끝인 것을

텃새들은 겨울부터 아니 그전 겨울부터 아니아니

그 전 겨울부터

목 아프게 지저귀고 있었다.

때론 비가오고 때론 개었다.

새 끼 식사는 한결 같았다.

아아

사는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어린 동생의 브라운관은 언제나처럼

총탄과 수류탄으로 울부짖고 있었고

그 틈에 우뚝 살아남은 영웅들의 미소가 의연했다.

그해 늦봄 나무들마다 날리는 것은 꽃가루가 아니었다.

부서져 꽂히는 희망의 파편들

오그린 발바닥이 이따금 베어 피 흘러도

봉쇄된 거리 벗겨진 신 한 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천지에서 떠밀려온 원치않은 꿈들이

멍든 등을 질벅거렸고

 

그 하늘 

그 나무

그 햇살들 사이

내안에 말라붙은 강 바닥은

찍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모든 것이 남은 천지에

남은 것은 없었던 그 해  늦 봄

 

..................................................................................................................

시인의 깊은 속을 내가 어이 알까마는

그저 읽노라면

아리송 아리송 가슴에 나도 모르게 적셔오는 그 어떤 느낌....

시인은 위대하다.

시인은 대단한 사람이다.

 

이목구비가 

없는 사람은 없을 진데

똑같은 태양아래

똑같이 바람쐬며 숨쉬고

찬것 뜨거운것 

향기도 악취도 같이 느끼건만

시인의 감성은

독특하다

 

그 

독특함이 시이고

그가 느끼는 것은 나와 다르다.

부럽고

닮고 싶어도

영원히 할 수 없는 그저 하망한 바램일 뿐

..........................................................................................

아내와 장기두며

아내는 삐치고 토라져서 말도 안해

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너무 힘이든다.

 

왜 져 주지 못했을까?

찬 바람에

옷깃 여미고 천변을 걷노라면

토라진 아내의 마음이

나도 모르는 새

다 녹아있었다.

 

다 

늙어서

할일 없는 두 노인네가

장기를 두고

토라지고 삐치고 약올라 하는 것도

하나의

아름다운 詩라면

詩이다.

................................................................................................

비산경노당 노인들이 한 해를 보내며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었다.

언제나처럼 마이골에서

이젠

질려버린

언제나 똑같은 오리주물럭